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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手作] 행복은, 그래서 / 이명주, 텍스타일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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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재미난手作] 행복은, 그래서 / 이명주, 텍스타일 아티스트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재미난 手作

 

행복은, 그래서 

 

이명주, 텍스타일 아티스트

 

천천히 산책을 하다가 버려진 함지박을 보게 되었다. 그 옆에 피어있는 개망초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수많은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열린다. 나는 바로 작업실로 가서 천과 가위, 바늘과 실로 즐거운 놀이를 하듯 자유롭게 손을 움직인다.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떠올리며 즉흥적으로 함지박을 가위로 자르고 개망초도 옆에 잘라서 놓아둔다. 그렇게 내 작품들은 시작된다. 

자유롭다. 그리고 즐겁다. 놀이는 추억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흐르고 흐른 시간 속에서 지금의 것들은 옛것이 되는,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돌고 도는 이치처럼 그저 즐겁게 논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의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소소한 것들이다. 꽃, 수양버들, 곤충, 새, 물고기, 애벌레, 개구리, 그릇, 책, 함지박, 항아리, 밥상 등등. 

어디에서 본 것처럼 친숙하고 익숙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는 소소함과 소박함이 묻어 있는 삶의 흔적들을 자르고 붙이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퍼즐 놀이를 하듯 하나씩 맞춰간다. 색의 조화, 구도의 완벽함, 이런 것들은 나에게는 멀고 의도되어 있지도 않다. 천의 무늬와 색은 주변의 다른 천들과 친해지고, 이들은 분별되지 않는다. 그뿐이다. 옳고 그름의 구별 없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여기서 풀어낸 소망을 조금씩 담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행복은 원래 소소한 것이다. 

바느질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그림을 그리듯이 바늘은 붓이 되고 실과 바늘땀들은 색이 되고 선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바느질이란 나만의 언어이자 감성을 자극하는 신호이다. 그래서 작품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나를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준다. 가끔은 생각을 넘어 텅 빈 고요도 느껴지는데, 이를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고 할까. 

그릇 옆에는 꽃이 피고 책들 곁에는 곤충들이 날아다니듯이 무정물(無情物)의 사물들은 자유롭고 유연한 생명체를 만나 속닥속닥 말을 걸어주고, 꽃들이 흩날리며 춤추듯 바람이 일어나 토닥토닥 다독인다. 근심 걱정을 잊게 해주는 무용(無用)이 유용(有用)으로 변하는 과정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은 반어적 표현으로 ‘무용한 것들’이다. 어쩌면 무용한 것들은 없다. 그저 흐를 뿐이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소환해 애틋한 그리움과 온기를 느끼며 잠시나마 멈출 수 있고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나의 작품 <책가도(冊架圖)>에서는 내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책들 중 특별히 나의 감성을 자극한 책들을 선택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어떤 책에는 제목이 없고, 제목이 수놓아져 있는 책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나만의 신호들이다. 마치 나침반처럼. 그뿐만 아니라 <제주 시리즈>는 작업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한 달간 걷고 또 걸으면서 어떤 날은 등대가 나에게 “내맡겨봐” 하는 듯했고, 어떤 날은 들꽃들이 “너무 애쓰지 마”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제비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봐” 하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처럼 마음의 길 위에서 온전히 내면으로 걸었던 감성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텅 비어있음을 느낀다. 이상한 것은 비어있음에도 더 많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물은 흐르고 흐를 뿐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다. 벚꽃의 달콤한 유혹에도, 사슴의 부드러운 입맞춤에도 연연하지 않고 도달하지 않는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러한 물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의 길 위에 서 있고 싶다. 그 아름다운 시간 속에서 내 바느질 작업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길 바란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나는 행복한 작가이다. 행복은 원래 소박하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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