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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지구 반대편의 경주 고분 / 황두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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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만남] 지구 반대편의 경주 고분 / 황두진, 건축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만남


지구 반대편의 경주 고분                              


황두진, 건축가


장소와 맺은 인연은 특별하다. 사람은 변하고 떠나며 죽는다. 사물은 망가지거나 없어진다. 그러나 장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오래 남는다. 변화무쌍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소가 갖는 연속성은 특별한 위안이다. 무언가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예측만큼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은 없다. 감사하게도 나 또한 여러 장소와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다. 그중 하나가 지구 반대편 스웨덴의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이다. 

10년 전쯤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계할 기회가 있었다. 소장품 중에 금으로 된 신라 귀걸이가 있었다. 1926년 스웨덴의 황태자이자 고고학자였던 구스타프 아돌프가 한반도를 방문했다. 일본은 마침 발굴 중이던 경주의 신라 고분 현장에 그를 초대했고, 그가 조금만 작업을 하면 바로 금관이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해 놓았다. 일본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만주로 떠나는 황태자에게 신라 귀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그 고분은 봉분이 복원되지 않아 평분으로 남아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봉총이다. 신라 귀걸이가 스웨덴으로 간, 그리고 스웨덴의 한자 이름인 ‘서전’(瑞典)의 첫 글자가 신라 고분의 이름에 붙은 사연이다.  


경주, 신라, 고분…. 한국인들에게 유난히 아련하게 느껴지는 이 단어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몇 차례 스웨덴을 오갔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것을 알게 되었다. 스웨덴에도 ‘고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니 경주의 고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했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면서 생물학자 칼 폰 린네,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등을 배출한 웁살라 대학이 있는 스웨덴의 고도 웁살라의 교외 지역인 감라 웁살라에 그 고분이 있다고 했다. 정말 가보고 싶었으나 제한된 출장 기간 중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곳을 찾아간 것은 정작 그 박물관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지 몇 년이 지난 2019년이었다. 스톡홀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올라갔다. 북구 특유의 우중충한 날이었다.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차갑고 눅눅한 공기를 맡으며 교외로 발길을 옮기자 정말 거짓말처럼 경주가 나타났다. 나지막한 구릉과도 같은 고분들이 능선을 이루며 줄지어 있는 모습은 경주의 대능원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천천히 그 사이를 거닐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머리로는 부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경주와 웁살라가 어떤 인연이 있다는 말인가. 


이곳에 북구 신화 속의 세 왕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오딘(Odin),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당연히 스웨덴의 국가적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그냥 자연 지형일 뿐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훗날의 국왕 카를 15세가 발굴을 결정했다. 사람과 동물의 유해, 심지어 신라 고분처럼 금으로 장식된 부장품 등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결국 자연물이 아닌 역사 유적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고분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자료에 나와 있지 않으나, 그들이 왕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조성된 시기다. 5세기에서 6세기로 추정되는데, 경주의 신라 고분 중 위에서 언급한 서봉총이 5세기, 천마총이 6세기, 무열왕릉이 7세기로 추정, 혹은 확인된 것과 비교하면 시기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어떤 우연과 필연이 겹쳐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 두 나라에 이렇게 유사한 인공물이 세워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이 장소와 맺게 된 인연은 나의 삶의 지울 수 없는 일부이며 나는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앞으로 나 자신은 물론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소멸하겠지만 경주도 감라 웁살라도, 그 아름다운 고분들도 상상 가능한 시간 내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장소와 맺은 인연은 이렇게 유한한 인간의 삶을 훌쩍 추월한다. 내 지인 누군가의 말을 살짝 바꿔 보자면 ‘장소가 사람보다 낫다’라고나 할까. 박물관의 한국실이 개관하는 날, 나는 구스타프 아돌프의 손자인 현 국왕 카를 16세 구스타프 내외에게 한국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마침 경주에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종 그곳을 찾는다. 경주와 감라 웁살라, 고대와 현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 특별한 인연은 나에게 아직도 현재형이다.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건축공학 학사 및 석사, 美 예일대학교 건축학 석사.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2007) 수상. 저서로는 <무지개떡 건축><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한옥이 돌아왔다><가장 도시적인 삶><공원 사수 대작전> 등. 現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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