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동백과 마주하는 시간 / 강종열, 화가

매일 동백(冬栢)을 마주한다는 것은 동백을 그리는 작가로서는 행운이고 기쁨이며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에서 30분 정도 운전하여 작업실에 도착하면 30여 년 전 직접 심어 놓은 동백나무들이 이제는 제법 큰 나무들이 되어 서로의 연륜을 느끼며 반갑게 맞이한다. 솜씨 좋은 아내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과 함께 나지막한 작업실 대문을 여는 순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단아하고 진한 녹색 빛깔의 잎들과 초겨울부터 늦봄까지 긴 시간 내내 피고 지면서 비와 바람, 그리고 햇볕을 받으며 삐쭉삐쭉 내미는 동백꽃의 자태를 보는 순간의 설렘은 잊을 수 없다. 

이처럼 매일 동백과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작업실 안으로 들어와 아메리카노 한 잔과 언젠가 준비된 캔버스와 물감 등을 챙겨서 습관처럼 그 앞에 다가선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을 견디며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피워내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고, 보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보여준 다음 아낌없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멋진 동백, 그 아름다움.

혹여 겨우내 하얀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소복이 쌓인 눈 속에 피어 있는 선홍빛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며 그린다는 것은 극한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연작으로 동백꽃의 숭고한 아픔까지 그려내기 위해 작업실 앞에 있는 동백 숲을 거닐며 사색하고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독특한 작품을 위해 터득한 질료 덩어리와 함께 만들어진 물감의 본질을 거친 붓질로 예민한 빛의 이동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더불어 여과 없이 생물처럼 전달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숲의 인상, 숲의 생명체. 나에게는 작가로서의 끝없는 화두이며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2020년을 열어젖히는 마음, 아직 이 나이에도 설렘과 기대감에 차있다.

 

그대가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면

향일암 동백꽃을 보라고 말해주겠네

동백의 일거수 일투족을,

미련없이 이별하는 법을 보라고

 

저 꽃들, 푸른 갑옷에 둘러싸여

죽을 힘 다해 새 순 밀어 올리느라

봄은 이미 기진맥진 말을 잃었더라

 

돌산 파도는 끝도 없이 묻는데

대답 대신 절벽에서 모가지 째 뛰어내리던

저 꽃들,

저기 울둘목으로 뛰어드는 꽃들

 

불현듯 피었다 지는 동백의 말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종일 허리 한번 못 펴고 받아 적는

바다와 동백이 전부인 화백이 있더라

 

, 바다열차 타고 동백 꽃 보러간다

 

 

 

-김지헌 시 동백꽃 보러 간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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