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바람이 여는 길 / 가수 소향

음악은 시간을 붙잡아 두는 예술이다. 흘러가지만 멈춰있고, 멈춰있지만 흘러가는 음악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주체로서 존재한다.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이하는 가수 소향(43)은 그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를 통해 다시 한번 시대를 위로하고 시절을 노래한 그녀는 더욱 단단하고 명료해진 음악 언어로 대중의 마음을 두드렸다. 일상의 균열이 내면의 균형으로 극복되길 바라는 요즘, 그녀가 전해준 음(音)과 악(樂), 언(言)과 어(語)의 한 챕터를 펼쳐본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에 만난 그녀는 계절만큼 평온했고 날씨만큼 유쾌했다. 

“3년간 폐렴을 8번이나 앓으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노래할 때 빈혈까지 생겼어요.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방황하기도 했죠. 그동안 목 상태와 건강에 너무 자신만만했어요. 교만했던 거죠. 그런데 그때의 고통이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아픔을 가져본 사람만이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잖아요. <비긴어게인>은 건강이 회복되고 모든 게 좋아진 상황에서 했어요. 슬픔과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노래할 수 있어서 기뻤죠.” 

가장 큰 재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뉴욕행이었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기 위해. 무력감과 회의감을 짊어지고 떠난 여정에서 다시 찾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나’, 그리고 ‘나의 길’이었다. 

“한 달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아이비리그 투어도 했어요. 룸메이트도 사귀면서 유학 생활을 해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못 가봤으니 투어라도 해보자 싶었죠(웃음). 그러던 중 필라델피아에 갔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 담긴 플래카드를 발견했어요.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 순간, 지금 두려워서 포기하고 내려놓는다면 5년 후, 10년 후 내 모습은 어떨까, 후회하진 않을까 하며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나서 한 첫 스케줄이 MBC <복면가왕>이에요.

세상에 필요한 희망과 기쁨을 노래한다는 그녀가 <비긴어게인>에서 들려준 메시지는 단연 ‘위로’이다. 노래를 부르는 이와 듣는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음(音)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위로는 명사가 아닌 동명사가 되었다. 

“많은 분들이 위로받았다고, 포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해주신 말씀에 감사했어요. 제가 노래하는 이유가 바로 위로를 전하기 위함이거든요. 다른 가수들과 노래하면서 행복했고 절제와 합을 배웠어요. 혼자 지르거나 튄다면 그림을 망칠 수도 있으니 너무 내미는 소리나 애드리브는 자제하자고 생각했죠. 그래도 충분하니까요. 무대에서 혼자가 아니라 너무 의지도 되고 좋더라고요. 값진 기회, 좋은 추억이었죠. 늘 긴장하는 편이라 걱정했는데 정말 편하게 했어요. 다 그 친구들 덕분이죠.”

누구나 걷고 있는,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걸으면서 서서히 열리고, 열리면서 다시 걷게 되는 각자의 길 위에서 삶은 쉬이 평서문을 내주지 않는다. 묻고 또 물으며 새롭게 쓰이고 읽히면서 방황하기 때문에.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라고 하지 않았나. 모두가 <길>이라는 노래에 쉼표와 말줄임표를 찍어가며 눈시울을 붉힌 것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느껴서일 것이다. 

“그날따라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가수들끼리도 관객들도. 시대가 어렵다 보니 가수들도 달려오다가 힘들고 지치잖아요.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 ‘무엇 때문에 음악을 할까?’ 고민했던 것이 노래를 계기로 터진 거죠. 그걸 먼저 크러쉬가 터뜨려줘서 다행이었고 고마웠어요. 울었다는 건 마음을 열어준 거잖아요. 저도 깊이 생각하게 됐고, 그 마음 그대로 느껴져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는 신앙이 있어서인지 목표는 분명했던 것 같아요. 물론 수없이 방황하고 의문점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왜 이 길을 가는지’ 확신하며 살아왔죠.”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길 위에 서게 된 시점에서 <비긴어게인>을 함께한 그녀는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감사하다고 했다. CCM 가수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와 대중가수, 뮤지컬 배우, 작가*까지, 창작의 가지를 자유자재로 펼치며 풍성한 언어로 삶과 음악을 담금질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라는 의미를 새겨왔기 때문이다.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어요. 가수도 그렇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출간하게 됐죠(웃음). 사실 평소에 글 쓰고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생각을 털어놓는 작업이 책 작업이잖아요. 최근에는 10년간 <요한계시록>을 공부해서 <마라나타-첫 번째 일곱 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냈어요. 나름대로 헬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비교·분석했는데, 10년 동안 시리즈로 낼 계획이에요. 지난 에세이집은 1년 반, 소설은 2년 정도 걸렸어요. 너무 몰입해서 노래 연습도 못 했죠(웃음).” 

삶에 공명하는 명쾌한 언어는 지향점이 뚜렷하다.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영화를 제작하고 나면 하나씩 내려놓고 편하게 일상을 걷고 싶다고. 그 길 위에는 수많은 꿈이 놓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 성장을 거쳐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이란다.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 힘든 상처를 말없이 보듬어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날이 와서 ‘어떤 삶을 살았나, 후회 없이 살았을까’ 물었을 때 ‘예스’라고 답했으면 좋겠어요. 보잘것없고 부족했지만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아꼈고, 그들을 위해 희생한 것들을 추억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죠. 가수로서는 이 땅에 천국을 생각나게 해주는, 목소리를 통해 다른 세상을 잠시 가져온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더 노력해야죠.” 

안정적인 호흡에서 발화된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경계 없는 창법으로 넓은 음역을 구현하는 최고의 악기이다. 그 떨림과 울림이 닿는 곳에는 아름다운 노랫말이 기다리고 있다.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비켜갈 수 없다는 걸/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그녀가 꼽은 인생곡 <바람의 노래>의 따스한 가사이다. 앞으로 그녀의 바람은 어떤 바람을 타고 흘러가게 될까. 바람결에 불어오는 모든 언어가 궁금해진다. 소향의 소향(所向)이. 

글. 김신영 편집장

사진. 준뮤직 제공

*소설 <아낙사이온><크리스털 캐슬>, 에세이집 <사랑, 그 완벽한 알고리즘에 대하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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